한여름의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는 오후 2시, 햇살과 사투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습식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거리로 나섭니다.
이 더운 날씨를 견디며 예술의 전당으로 향한 이유는 바로 로이터 사진전 때문이었는데요-
'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하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로이터 사진전에서 450여 점의 다양한 사진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
사진으로는 싱그러워 보이는 여름의 풍경이지만 더워도 너무 더워요…. 역에서 거리가 꽤 되는 예술의 전당을 굳이 걸어온 10분 전의 자신을 욕하게 됩니다.
멀리 보이는 로이터 사진전의 현수막이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 마냥 반가웠어요!
방학시즌을 맞아서인지 평일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어요. 함께하는 앤서니 브라운전 때문인지 어린이들도 많이 보였답니다 :)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지난겨울 내셔널 지오그래픽전을 보러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티켓을 끊고 오디오 가이드도 함께 대여합니다 :) 이번 로이터 사진전의 오디오 가이드는 배우 진구씨가 참여했는데요, 중저음의 목소리가 전시와 아주 잘 어울렸답니다.
아쉬운 점은…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는 시스템이 매우 불편했다는 것…ㅠㅠ 이어폰이 귀에 안 꽂혀 한참을 고생했어요.
그리고 사진과 함께 그 히스토리가 워낙 자세히 적혀있어 굳이 듣지 않고 읽는 걸로도 충분했어요.
이번 로이터 전시회는 총 7개의 섹션(Reuters Classic/Emotion/Unique/Travel on Earth/Spotlight/Epilogue)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섹션을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 (사진은 모두 로이터 사진전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습니다)
Reuters Classic 시선의 권리
이 섹션은 20세기에 발생한 굵직한 사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약 백 년간의 기록이 담겨있는데 1차 세계대전의 모습과 함께
역사의 흐름을 기록한 다양한 사진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상단 사진은 영양실조의 한 살배기 아이가 엄마의 입술을 누르는 사진인데, 니제르 역사상 가장 기록적인 2005년의 가뭄 때 촬영된 사진이라고 해요.
어린아이의 새하얀 손톱이 대비를 이루며 비극적인 상황이 잘 담긴 강렬한 사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motion 탈 원근적 시선
스포츠 현장 사진을 비롯하여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긴 섹션이에요. 김연아 선수의 모습도 함께 전시돼 있어 감회가 새로웠답니다 :)
가장 인상깊었던 사진은 상단에 게시된 튀니지 군인의 사진이었는데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에서 정부와 시위대 중앙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전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강렬했습니다.
Unique 시선의 흐름
보도 사진이 항상 심각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Unique 섹션은 7개의 섹션 중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가능했어요 :)
세계 각국에서 열린 축제, 소소한 일상이 담겨있는 사진은 일반적인 보도사진과 달리 총천연색이 다양하게 찍혀있어 보는 즐거움이 남달랐답니다.
Travel on Earth 중첩의 시선
이국적인 지구의 풍경이 담겨있는 섹션입니다. 총칼이 난무하는 다른 섹션에 비해 자연의 모습만 담겨 있어 가장 평화로웠답니다 :)
이 섹션에서는 오디오 가이드를 멈추고 잠시 가만히 앉아 사진을 관람했답니다. 인상 깊은 사진이 많았는데 담아오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ㅠㅠ 슈퍼문이 뜬 스페인 올베라의 모습과 운무 아래 장엄한 모습을 자랑하던 후지산의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모든 마을이 파랗던 인도의 조디푸르의 모습도 인상 깊었고요.
Reality 깊이의 시선
Travel on Earth와는 또 다른 의미로 인상 깊었던 Reality 섹션은 로이터의 정체성인 보도 사진 섹션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이 가능했다면 이 섹션에선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어요.
적나라하게 펼쳐진 세계의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참혹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리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 곳곳이 허물고 부서진 참혹한 모습이 현장감 넘치게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기자를 보고 환하게 웃던
어린아이가 곧이어 벌어진 폭탄테러에 정신없이 울며 달려가는 모습은 비현실이라 믿고싶을 만큼 참담한 현실이었습니다.
파리에서의 테러 이후 에펠탑을 보며 희생자를 기리는 사람들의 뒷모습,
순식간에 무너진 쌍둥이 빌딩에서 숨을 거둔 희생자와 그들의 물건,
무차별 테러로 인해 길거리 한복판에서 숨진 여자를 보고도 그 현실에 익숙해져 유유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마치 폭죽놀이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담겼지만, 사실은 가자지구에 발사된 섬광 수류탄,
낙조가 아름답다 느꼈지만, 사실은 시리아 난민들을 태운 채 엔진고장으로 표류 중인 사진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도, 눈시울을 뷹힐 만큼 감동적인 장면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누군가의 얼굴을
담아낸 것도 아니었지만 참담한 현실의 모습이 아주 오랫동안 잔상처럼 아른거려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사진을 관람했습니다.
로이터 사진전을 보며 떠오른 찰리 채플린의 명언 하나를 덧붙입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한 인간의 희로애락부터 시대의 중요한 순간까지.
가장 가까운 시선으로 비극적일 만큼 아름다운 사진을 담아낸 로이터의 공정한 보도가 계속되길 응원해봅니다 :)
